분석이라고 썼지만 사실 허접해서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선교적 차원에서의 개신교인들의 멘탈을 말하고 싶다.
먼저, 개신교인들은 왜 거리에 나와 전도를 하려고 하나? 그 거리를 넘어 세계로 뻣어 나가려고 하나?
바로 예수의 승천하실 때의 명령 때문이다.(마 28:19; 행 1:8)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길거리에 나와서 말로써 전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예전부터나 지금에까지나 문제가 되어 왔는가?
첫째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표어(?)때문이고
둘째는 '믿음'을 강요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두 요소가 절묘히 합처져 공해를 일으키고 있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저 두 요소가 옳은지 그른지를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복음=예수천국 불신 지옥으로 성립하는 지 회의스러운 입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양심에 따라 살면 천국에 이른다는 말에도 물론 전적인 동의를 하기가 쉽지 않다.(아마 나의 태생적 근본주의의 영향 때문이리라)
여튼, 이 입장들은 차후에 생각할 일이 있다면 한번 해보겠지만 지금은 단지 의도와 효율성 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어떠한 효율성이냐 하면 전도란 과연 이렇게 무식하게 하는 것인가? 에 대해서다.
1. 개신교인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전도를 한다.
2. 복음을 말하는 데 그가 교회에 나온다고 하면 잃은 양 하나 얻은 것이다.
3. 복음을 말하는 데 그가 교회에 안나온다고 하면 원래부터 그는 지옥 갈 운명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되면 되고 아니면 말고라는 멘탈이 엿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한 영혼을 위한다는 생각은 없고 오로지 천국가서 한소리 듣지 않기 위해 행동하는 것일까?
그들의 의도는 암만 생각해도 이것을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본다.
효율적인 맥락으로 들어가 보자. 길거리에서 전도를 한다는 것은 명백히 복음을 전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머? 그것을 니가 왜 따지냐고? 단지 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신다고?
(이딴 소리를 한다면 답은 없는 것이겠지. 논리적으로 반박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아무튼 이 전제에 동의를 한다면 나는 말의 침묵과 행동의 소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아마 개신교 내에서도 이러한 주장들이 많이 들릴 것이다. 나 또한 이것에 동의한다.
길거리에서 예수를 전한다. 참 좋은 발상이다. 허나 70-80년대에서도 통할 법한.
이제는 2010년대를 맞이해 30-40년이나 지났다. 모두 전도하는 것이 굳어져 대부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우리 조금 유연해지며 그것이 100% 옳은 것이다라는 어떠한 관념에서 벗어나 보자. (허나, 그것이 신앙화가 되어버렸다면 쉽지 않겠지. 벗어나는 것은 곧 그들 또는 우리에게 배교로 보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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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에 쓴 글인데ㅜ
지금은 태극기 부대 멘탈 탐구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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