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조선인들 근처에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조선인들은 더럽고 돼지와 함께 살아서 냄새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아이들 몸에는 이가 득시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부라쿠민(일본의 신분제도 아래에서 최하층에 속하는 천민집단)보다 더 천한 족속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부라쿠민에게는 일본인의 피가 섞여 있으니까.(19)
아키코는 노아의 인간성을 볼 수 없었다. 노아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가장 원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조선인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 되고 싶었다.(118)
죽어버려, 못생긴 조선인.
보조비 챙길 생각하지마. 너희 조선인들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어.
네가 자살하면 내년에는 우리 학교에서 더러운 조선인 한 명이 줄어들 거야.
조선인들은 문제아에 돼지들이야. 지옥으로 꺼져버려. 넌 왜 여기 있니?
너한테서 마늘 냄새와 쓰레기 냄새가 나!
할 수만 있다면 네 머리를 직접 베어버리고 싶지만 내 칼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213)
잘 들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같은 사람들은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공포에 떨고 있아.(220)
솔로몬의 조선어 실력은 딱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솔로몬은 아버지와 함께 남한을 수차례 방문했지만 그곳 사람들은 두 사람을 일본인으로 대했다. 귀향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 가슴을 치며 통탄하는 독선적인 조선인들에게 왜 모국어가 일본어인지 설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맛있는 바비큐를 맛보러 온 일본인 관광객 행세를 하는 게 훨씬 쉬웠다.(316)
파비가 일본인들이 인종주의자들이라고 말할 때마다 솔로몬은 에쓰코와 가즈를 들먹이면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에쓰코는 상냥하고 민족을 차별하지 않는 모범적인 일본인이었지만 피비는 에쓰코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에쓰코의 영어 실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 물론 몇몇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쓰레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쓰레기 같은 조선인들도 있다고 솔로몬은 피비에게 말했다. 쓰레기 같은 일본인도 당연히 있었다. 과거의 일을 계속 끄집어낼 필요는 없었다. 솔로몬은 피비가 그러한 분노를 극복해내기를 바랐다.(319)
에쓰코는 솔로몬에게 엄마 같은 사람이었고, ... 하루키도 그에게 삼촌 같은 사람이었다. 이 세 사람은 일본인이었지만 좋은 사람들이었다. 피비는 그 사람들을 솔로몬과 같은 방식으로 겪어보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 피비가 그들을 이해해주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어떤 면에서는 솔로몬도 일본인이었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피비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단순한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 끈끈한 뭔가가 있었다. 솔로몬은 피비와의 격차를 좁혀 나갈 수 없었고,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피비를 보내주어야 했다.(369)
재일교포, 자이니치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처음 알았던 건 군대시절 맞선임 권해준 책때문이었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레볼루션> 시리즈의 ‘순신’이 재일교포였다. <레볼루션>이 넘넘 재미있어서 가네시로 카즈키의 책을 다 읽게 되었다. 그중 <GO>가 순신의 이야기였다. 2001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땐 재일교포가 차별을 그렇게 심하게 받는지 몰랐다. 아마 차별에 대한 내 인식이 그렇게 예민하지 않았나 보다.
층격받았던 건 영화 <자백>에서였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사람들.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사람들. 한국에서도 외면하고 일본에서도 외면하기에 희양삼 삼기에 참 좋았던 사람들. 독재는 그들을 희생양 잡아서 정권의 제물로 삼았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김기춘이 비서실장이 되었을 때 그들의 심정은 얼마나 처참했을까?
비록 책이 번역체가 심하여 글맛을 보지는 못했지만(곧 다른 출판사에 책이 나온다는데 번역을 잘 해주셨으면) 그럼에도 꿋꿋이 읽었다. 이 책이 일본인들을 비난하는 책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별은 우리에게도 있다. 난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나 동남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본다면 우리에게도 파친코의 이야기는 남 말이 아닐 것이다.
책은 1989년의 시대로 끝이지만 지금은 30년 훨씬 지났다. 그 사이 대한민국의 위상이 달라졌기에 또,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해져 지금은 그런 차별이 심하지 않다고 들은 것 같다. 그럼에도 파친코 속 소수자들의 이야기들은 계속 되고 있고 우리는 그 소수자들을 살펴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신앙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던 이삭이었는데 그 후손은 복은커녕 끔찍한 일들을 당한다. 과연, 신앙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경희와 모자수(모세)가 보인 태도에서 나는 그 힌트를 본다. 경희는 선자의 어머니 양자를 끝까지 보살폈고, 모자수도 자신의 재혼녀의 딸이 에이즈에 걸렸지만 매주일 예배를 마치고 찾아가 기도를 해준다.
“내가 여기 오고 나서 네 아버지가 일요일마다 찾아와. 엄마한테 휴식이 필요하다면서. 나는 가끔씩 자는 척하다가 저 의자에 앉아서 날 위해 기도하는 네 아버지를 봤어. 난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이전에는 날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솔로몬.”
솔로몬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머니와 큰할머니도 토요일에 찾아와. 그거 알고 있었니? 그들도 날 위해 기도해줘. 예수 따위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픈 사람을 어루만져주는 사람들한테는 뭔가 성수러운 게 있어. 여기 간호사들은 날 만지기 무서워해. 네 할머니는 내 손을 잡아주고, 네 큰할머니는 내 몸이 너무 뜨거울 때 내 머리에 시원한 수건을 올려줘. 두 분 다 내게 친절해.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인데......(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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