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고등학교 때부터 복학 1년까지 참 잘 사용했다. 이후 페이스북으로 넘어가게 되어 거의 잊혀졌지만. 잊혀진 사이 싸이월드는 없어졌었다. 이사를 하고 엽서를 봤는데 오랜 만에 잊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잘 지내나 궁금했는데 싸이월드가 다시 부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 홈페이지에서는 오늘 재개가 될거 같은데 다른 기사에서는 7월 중으로 떳더라.
개발자님께서 무한 밤샘 중이시란다. 180억장의 데이터까지. 저기 데이터 중에 내 흑역사가 있다는 것이여!
우리들의 추억, 우리들의 흑역사
싸이월드에 정말 추억이 많다. 첫사랑에게 나는 뭘로 고백을 했느냐! 바로 싸이월드에 고백을 했다! 으아으아으아!! 지금은 최악의 고백으로 불린다는데 내가 그 당시 뭘 알았냐. 고3이었지 싶은데. 생각해보면 싸이월드로 고백 이후에 첫사랑의 태도는 수락도 아니었고 거절도 아니었다. 나는 아무말 없기에 거절인줄. 생각해보면 고백도 처음이었고, 사귈래 말래라고 내가 물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걸 꼭 말해줘야 한다던데 나는 그것도 몰랐다. 고3이 뭘 알긋냐!
근데 다행인 건 내 흑역사가 다 들어있는 아이디는 이미 한 번 계정을 삭제를 했었다. 하하하 아마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지웠지 싶다. 근데 그후 계정을 바로 다시 만들었지. 첫사랑이랑 일촌을 했는데 그때 일촌명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짝궁' ㅠㅠ. 내가 진짜 군대에서 이때 이 일촌명이 왜케 기억에 남던지. 김태우 노래 중에 <내가 야!하면 넌 예!>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 가사 중에 "내가 꿍 하면 그대는 짝, 반대로 말해도 우리는 짝꿍"이란 가사가 왜케 다가오던지. 우리가 짝궁이었지. 그것도 친히 너가 지어준 일촌명이었는데.
그외에도 신호등 앞에서 첫사랑을 만났던 그날이 또 얼마나 생각이 나던지. 훈련소랑 야수교때 정말 생각이 많이 나더라. 플라이 투더 스카이이 부른 <취중진담>을 듣는데 왜 그리 첫사랑이 생각났던 걸까? 아. 그땐 내 나이 21살이었네. 불과 몇 달에서 1-2년 된 이야기니깐 당연히 생각이 많이 났겠다. 나에게 싸이월드는 첫사랑과의 기억이고 추억이다. 생일 선물을 특별한 선물로 주었을 때 너는 그 선물을 친히 싸이월드에 올렸더라. 별거 아닐 줄 알았는데 감동을 받는 너의 모습을 보고 나는 참 기분이 묘했다. 순진한 나는 첫사랑을 하며 밀당이 이런 거구나 싶었고, 누구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도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쯤에는 이 동네를 떠난다. 8살때 이사를 와서 가장 많은 시간을 살았던 곳. 이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첫사랑과 오랜 시간 이야기했던 장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외에도 함께 학교를 뛰어가던 일도. 크리스마스 이브 올라이트때 너와 나, 예지랑 이렇게 밖에 나갔던 거. 그때 왜 나갔을까? 또, 나는 그때 너의 옆구리를 꼬집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쳤나 싶다.
얼마 전 비가 오는 날 너와 함께 걸었던 장소를 조금 둘러 봤다. 싸이월드도 지금 잠깐 흥하겠지만 연말까지, 내년 초까지 그 기세가 이어질까. 아닐 것 같다. 추억은 추억으로만 있을 때 아름다우니깐. 그러니 마지막일듯한 이 추억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어 길을 걸었고 싸이월드를 기다린다.
썸의 기억
(1) 첫사랑과의 추억만이 다가 아니었다! 첫사랑과의 관계가 다 무너진 이후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다른 썸을 이어나갔다. 그땐 썸인지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면 썸이었다. 특수교육과인 친구여서 같이 봉사활동도 다니고 그랬다. 음, 일단 이 친구랑 나랑은 알게 된지 좀 되었다. 고1때였지 싶은데 교회 수련회를 갔는데 같은 조가 되었다. 그때 이후로 알고 지내다가 20살 수련회 진행부에서 또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군대가기 전이라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중학교 친구도 진행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이 중학교 친구가 이 친구를 오랫동안 좋아했더라. 그래서 나는 중학교 친구와 이 친구를 연결시켜줄 겸 같이 다녔고 봉사활동도 셋이서 같이 시작하기도 했다.
중학교 친구는 나보다 군대를 3달 더 일찍 갔던 거 같은데 이 놈이 가기 전에 이 친구에게 고백을 하고 군대를 갔다. 그러니 이 친구는 얼마나 황당했겠나. 고백 후 군대? 어쩌라고! 물론, 그게 아니여도 절대 사귈 수 없었을 것이다. 여튼, 중학교 친구가 군대를 간 이후에도 나는 봉사활동을 계속했고 이 친구와는 계속 친하게 지냈다. 때마침 나는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이 친구와의 데이트를 싸이월드에 마구 올렸다. 헤어진 여자친구 보라고 막 올린 것이다. 그리고 데이트를 한 사진 아래에는 댓글 대화가 마구 이어졌다. 지금 보면 완전 썸이었어. 썸. SNS도 아닌데 실시간 대화 비슷하게ㅜ 전 여자친구는 그렇다 쳐도 내 첫사랑은 그걸 어떻게 봤을까. 정말 철없었다.
후에 군대를 전역하고 1년 정도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몇 달 일하는데 중학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공장 작업터에는 세 개의 회사가 있었는데 나는 A 회사에 그 친구는 B 회사에서 일하였다. 이유는 B회사에 일하고 있는 한 친구도 내 중학교 친구였는데 그 친구랑 고백했던 내 중학생 친구가 베프여서 였다. 그렇게 또 친해져서 보고 그랬는데 그때까지 이놈이 이 친구를 못 잊고 있는 거였다. 여자친구도 있었던거 같은디;; 여튼, 또 고백을 했다고 하던데. 또 차였지. 근데 그때 중학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OO랑 잘 어울리던데 잘 해봐라"(어울리던데는 정확한지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데 잘 해봐라고 말했던건 확실!) "OO가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 같애" 이렇게 말했다고 중학교 친구가 나한테 말하더라. OO은 나다. 그때 좀 애매했다. 중학교 친구가 그렇게 오래 좋아했는데 내가 사귀게 되면 모양새가 많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부모님들끼리도 알고 있는 사이여서 나는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그렇게 뭐 끝!
(2) 우리 과에서 가장 예뻤다. 아니, 나는 학교에서 제일 예쁘게 보였다. 처음에 학과 임원을 맡은 친구가 나에게 같이 임원을 하자고 했다. 나는 막 복학했는데 좀 그렇다고 했다. 그럼 조장은 맡아달라고 했다. 오케이! 그것까지 수락. 그래서 우리 조에는 예쁜 애들 조원으로 해달랬는데 그 친구가 정말로 그렇게 해줬다. 그 예쁜 친구가 내 썸녀였다. MT에서 우리는 많이 친해졌다. 우린 장난을 많이 치는 사이였다. 싸이월드에서 MT하이라이트인 발표회때 내 사진을 올렸다. 어떤 사진이였냐면 악마 분장을 한 것이다. 그 악마 분장을 썸녀가 해줬다. 그때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정말 이상하게 나왔더라. 그거 가지고 또 투닥투닥했네.
2학기에는 도서관에서 거의 썸녀랑 장난치면서 놀았다. 어죽하면 같은 과 누나가 둘이 사귀냐고 할 정도. 그때 참 나는 썸녀랑 재미있게 말하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다. 말할 때 몇 수의 준비를 했다. "오빠 말하기 학원 다녀요!?"라는 말을 듣게 되어 나름 흡족했던. 첫사랑 이후 누군가에게 그렇게 마음이 간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 기억에 남는 건 세 장면
#1
썸녀와 나는 도서관 사물함을 같이 썼다. 썸녀의 사물함이었는데 내가 좀 빌려서 같이 쓴 거였다. 썸녀가 같이 써도 된다고 해서! 그래서 고맙잖아. 깜짝 선물을 줬지. 썸녀가 카라멜 마키야또를 좋아한다고 지나가면서 얘기하는 걸 듣고 그걸 주려했지. 근데 밑에 편의점에는 그걸 안 파는 거야. 그래서 그나마 있는 라떼를 준비해서 사물함에 넣었지. 쪽지와 함께. 카라멜 마키야또가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함께. 그냥 대충 고맙다고 할 줄 알았는데 '감동'했단다. 어디에 있냐고 날 찾는다. 그때 '감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한동안 썸녀가 생각났다.
#2
복학 후 도서관에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토요일 늦게까지 도서관에 있었을 때니깐. 평일도 마찬가지 였다. 썸녀에게 한참 빠져있었을 때 내 자리는 창가였다. 당연히 창가를 빤히 보면서 썸녀 생각을 마구마구 할 때였다. 근데 딱 날 놀래켜 주려고 옆에서 대기하고 있더라. 얼마나 좋았던지 난 이런 글까지 남겼다.
너
하루종일 창 밖을 바라보며
널 생각하고 있을 때.
그때 너가 나에게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때 너가 몰래 내 뒤로 다가오더라.
너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난 알겠더라.
괜히 놀란척.
아마 하루종일 너 발자국 소리만 생각했었나보다.
너의 발자국 소리는 종일이었지만
너는 순간이더라.
그렇지만 너 뒷모습은 발자국 소리만큼 종일 가더라.
어쩌면 지금까지도.
2014년에 써졌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 그 전에 썼던 글이지 싶다. 특히나 "아마 하루종일 너 발자국 소리만 생각했었나보다. 너의 발자국 소리는 종일이었지만 너는 순간이더라.그렇지만 너 뒷모습은 발자국 소리만큼 종일 가더라." 이 문장들이 참 좋다. 이 친구랑 썸일 때 남긴 시같은 것들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이건 덤으로
부산역
그곳에 발을 놓는 순간.
공기가 너더라.
이미, 어느새 그곳은 너가 되어버렸다.
어느날 우연히 만난 너가
내 앞에 왔을 때.
그 날에 너더라.
너를 마지막으로 본, 그 날
나는 너를 잡지 않았다.
하지만,
Thank you for marking my heart pound.
편입을 결정하고 오랜 만에 부산을 갔을 때 쓴 글이다. 부산이 좋았던 이유는 유일하게 내 청춘을 보낸 곳이니 참 좋았다. 그 대부분은 썸녀와의 기억이기도 하고. 다음 장면은 저기에도 적혀 있듯 "어느날 우연히 만난" 날이다.
#3
썸녀와의 기억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 평범한 날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내려가는 썸녀를 만나고 나는 공부하려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집에 가?"라고 물었던 것 같다. 수업 끝나고 집에 간다고 했다. 나는 그런 줄 알고 자리를 잡아 놓고 수업인가 밥을 먹으러였나 여튼 도서관을 나간 기억이 난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내 앞에 누가 가방을 놓은게 아닌가? 응? 가방을 보니 썸녀 가방인데. 응?? 집에 간다고 한 녀석이 왜 내 앞에 자리를 맡아 둔 걸까. 썸녀는 왔고 우리는 또 달콩 장난을 쳤다.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그날 참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내 카톡 알림말은 "I met by chance"였는데 정말로 우연히 만나게 되어 좋았다.
편입을 하고 참 잊기 힘든 기억이었다. 편입을 하고 바로 카톡이 왔다. 오빠 진짜 갔냐고. 그게 마지막 대화이기도 했다. 사실, 그때 친했던 친구들이 가지말라고 했다면 나는 편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과장 교수님이 나를 직접 불러 학과 과대를 부탁했다. 근데 나는 그때 편입을 할 거라고 말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그렇게 떠났다.
간혹 그때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많은 것이 달라졌을 거라고 본다. 그럼에도 나는 가장 잘 했던 선택이라고 자부한다. 행복했던 기억들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사역하다 보니 그게 큰 장점으로 다가 온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되고 더욱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네.
싸이월드 이야기하다가 쓸데없이 다른 이야기로 길어졌다. 보니 싸이월드에서도 여러 행사를 기획하는 듯하다. 나는 사진이라도 찾기를 좀 바란다. 없어질 때 사진을 포맷할 수도 있었지만 흑역사로 생각하고 놓쳤다가 나중에 후회되더라. 이번에 사진이라도 포맷해놔야겠다! 방명록은 미리 해뒀지만ㅋㅋ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