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막
이집트는 다들 아시다시피 아프리카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그 유명한 나일강이 있고 고대 4대 문명 중 하나이다. 강의 수량은 아주 풍부해서 농사가 잘 되었다. 그래서 주변 국가들이 식량을 사러 가는 곳이었고 그렇기에 강대국이 될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다. 이집트는 농사를 했기에 자연스레 농사를 관장하는 태양신에 의존하였다.
이런 이집트를 모세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구하셨다. 최고의 권력자 바로는 10가지 재앙으로 인해 무너졌다. 마지막에는 놀랍게도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맛보기도 했다. 그 강대한 애굽의 군인들은 공격 한 번 못하고 물에 쓸려나갔다.
이런 대단한 기적들을 맛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큰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더 강대한 나라를 만들어주시지 않을까 기대도 있을 법하다. 그런데 그 기대는 애굽을 탈출해 광야로 나가면서 처참히 무너진다.
그런 와중에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다. 아주 세부적인데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시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돋보인다. 그렇게 결국 성막을 만들긴 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은 어땠을까?
고대 이집트 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은 대부분 신의 능력은 신전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생각했다. 신전의 크기, 제물의 양과 질, 제사장들의 숫자,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신의 크기가 크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당시의 이집트의 대표적인 신전은 카르낙 신전이다. 폭이 800m, 길이가 1.5km였다. 이런 신전이 이집트 곳곳에 있었는데, 대리석, 화강암, 석회암 등의 돌로 정교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져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뺏어갔다.
그런 웅장한 성전들을 보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만들라는 성막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한본판에서 완성한 성막은 길이 50m, 폭 25m였다. 성막 전체가 370평인데, 카르낙 신전은 36만평이 넘었다.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염소 털로 만든 천막이었다. 성막 덮개는 네 겹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해달, 붉은 수양의 가죽, 염소털로 짠 휘장, 백색, 청색, 자색, 홍색 실로 ᄍᆞᆫ 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성막 안에 성소의 크기는 길이가 10m, 폭이 5m다. 그 안에는 금을 덧씌운 떡상과 숟가락, 대접, 그리고 34kg의 순금으로 만든 등잔 7개를 올려놓은 등대가 있었다. 외부의 햇살이 안 들어 가운데 올리브기름으로 등불이 밝혀졌는데 그 빛으로 인해 황금빛 기구들이 빛나고 있었다.
강한 빛을 받으면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집트 성전과는 너무나 비교가 된다. 그에 비하면 성막은 보잘 것 없다. 제물을 태울 때 나는 연기, 그을음, 먼지 냄사가 더해지면서 성막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모습과는 달랐을 것이다. 이집트서 400년을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종노릇했지만 그럼에도 본 것은 우아했다.
성막을 덮고 있던 네 겹의 덮개와 중근동의 뜨겁고 건조한 날씨를 생각해 보라. 성막 안에 있는 성소나 지성소의 공기는 어땠겠는가? 성막의 실내 온도는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겨울을 제외하고는 덥고 답답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소 안에는 매주 밀가루로 반죽하고 올리브기름을 발라 구워 만든 진설병이 놓여 있었다. 24시간 올리브 기름을 태워 밝히는 7개의 등불도 있었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곳이니 좁은 공간의 공기가 많이 탁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때 그 장소에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집트 신전과는 비교가 너무나 되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의심할 것 같기도 하다. 이집트의 바로왕과 그 신들을 완벽하게 무찌른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보았다. 그 기대는 어쩌면 이집트 이상의 무언가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가령 이집트보다 더 강대한 나라라던가. 그런데 현실은 전혀 아니었다. 시궁창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새로운 거룩함을 제시했다. 세련된 겉모습만이 경건이 아니라는 것과 부와 힘만으로는 결코 능력이 아니라는 걸 성막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크고 화려한 것만을 추구하는 교회의 건물들이 모세오경의 성막 본문을 본다면 어땠을까? 교회가 플렉스 하듯이 화려하게 강남 중심에 큰 건물을 지으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드러날까? 세상이 우러러 볼 수 있을 것 같긴하다. 세상은 크고 웅장한 것을 좋아하니깐. 나도 서울을 종종 갈 때 강남을 통해 서울을 갔다. 거기를 지날 때 꼭 큰 교회가 하나 보였다. 대법원과 대검찰청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교회 건물이었다. 땅값만 3천억으로 알고 있다. 과연 그렇게 화려해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여러 생각이 든다.
2. 메추라기
메추라기는 꿩과의 철새다. 3~4월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이동한다. 겨울에는 반대로 다시 겨울을 나기 위해 유럽에서 아프리카 중부로 날아간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시나이 반도를 거친다.
성경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메추라기와 관련해 두 번 기록한다. 가을과 봄이다. 메추라기가 시나이 반도를 지나가는 시기와 맞물린다. 메추라기는 이렇게 두 번씩 대규모로 이동을 하는데 1900년대 초까지도 이집트 사람들은 200미터가 넘는 대형 그물로 긴 이동 중에 지쳐 있는 메추라기를 잡아 수출했다. 기록에 의하면, 1908년에 120만 마리, 1926년에는 약 54만 마리를 수출했다.
민수기 11장 32절에 메추라기를 모으는데 적게 모은 사람도 열 호멜이었다고 한다. 한 호멜은 ‘나귀에 가득 실은 한 짐’정도를 말한다. 열 호멜이면 나귀 열 마리에 메추라기가 한 가득 실려 있는 양이다. 적게 모은 사람이 그정도 였다. 대략 1000키로그램. 그러니깐 1톤쯤 되는 양이다.
광야의 들판 사방에 메추라기가 가득했다. 1미터도 안 되는 낮은 높이로 전후좌우 20킬로미터의 공간에 철을 따라 장거리 이동에 지쳐 있는 메추라기 떼로 뒤덮인 광야의 들판을 상상해 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워 담기만 하면 되었다. 1박 2일 동안 쉬지 않고 메추라기를 잡았다. 그 다음 포를 떠서 말리기 시작했다. 당시 냉장 보관이 불가능했기에 당연히 포를 말려야 했다(민 11장 32절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지금도 중근동 지역 시장에 가면 말린 과일, 말린 생선, 말린 고기 등의 건조식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지친 광야 생활에서 보화를 발견한 느낌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양의 고기를 깔아놓고 먹어도 먹어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고기들이 지금 눈 앞에 보인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졌다.
민 11장 33절 “고기가 아직 그들의 이 사이에서 씹히기도 전에, 주님께서 백성에게 크게 진노하셨다. 주님께서는 백성을 극심한 재앙으로 치셨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전에 각종 공사 현장에 동원되기도 했지만 원래는 목축업도 했다. 이집트인들은 목축업을 천하게 여겼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목축업에 종사했다. 그래서 집에는 양, 염소, 나귀, 낙타들이 있었고 출애굽때 자연스레 끌고 나왔다.
양과 염소에서 고기, 가죽, 우유를 얻을 수 있다. 또, 우유는 치즈와 버터를 만들 수 있다. 가축의 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머물 텐트는 물론이고 성막에 필요한 각종 재료로 사용되었다. 민수기 11장 4절에 고기를 못 먹어 불평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동물들이 있기에 이는 거짓말이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풍부한 홍해도 지났기에 거기서 물고기를 제법 많이 잡았을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원망하는 백성들로 모세는 고생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장로를 세우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먹고도 남을 고기를 주겠다고 하신다. 60만명이나 되는 큰 인원을 먹이신다니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가능케 하셨다. 메추라기를 바다에서부터 몰아 백성들에게 보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고기를 한 사람당 최소 1톤씩 가져가서 바로 포를 떠서 먹으려고 했다. 그들은 광야에서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어야 했다. 그러나 탐욕으로 인해 그 일은 깜빡한 채 욕심을 내 버린 것이다.
'흔적 > 공부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의] 중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5강 (2) | 2020.12.08 |
---|---|
[강의] 중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4강 (0) | 2020.12.01 |
[강의] 중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3강 (0) | 2020.11.26 |
[강의] 중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2강 (0) | 2020.11.19 |
[강의] 중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1강 (0) | 2020.11.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