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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목사 안수를 받다(김진홍 전도사를 기억하며, 김진홍 목사를 떠나보낸다.)

by 카리안zz 2020.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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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이외에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다름 아닌 김진홍 목사의 <새벽을 깨우리로다>이다. 나의 10대 가장 힘들었을 때 나는 그의 설교와 그의 신앙 수기 덕분에 지금 계속 교회를 다니며 사역을 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왜 사역자가 되려고 하는가 하면 그가 청계천에서 사역했던 일들에 감명을 받았기에,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저런 사역자가 되고 싶었다는 깊은 갈망 덕분에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실로 나의 10대 시절은 김진홍에게 열광적이었다. 그의 글 하나 하나, 특히 그가 청계천 빈민들과 사역했을 때 그 내용들이, 그리고 그가 영향을 받았다던 우치무라 간조까지 멋모르고 읽어나갔다. 

 그냥 낮은 자들과 함께 머무르며 현장으로 들어가는게 맞아 보였다. 내 영웅 김진홍 전도사가 그랬었으니까. 물론, 그의 변절 이후를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노동자 목사'에서 'MB의 절친', '킹메이커'가 되기까지 얼마나 큰 전환이며 요즘도 그의 이상한 말들은 듣기가 괴롭다. 우상이 파괴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만 무너져 내렸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김진홍 목사가 아닌 김진홍 전도사는 여전히 늘 동경의 대상이다. 그의 기개, 중정에서 고문당하면서까지 보였던 그 신앙의 결기랄까. 빈민들과 어울렸던 그 모습들은 여전히 내 사역을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사역하려고 했던 이유와 동기가 늘 잊혀져질 때면 그의 사역을 떠올려 본다. 이런 걸 모먼텀이라고 하나? 

 김진홍의 그 현장은 그토록 비참했다. 요즘 그 정도로 비참한 현장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역을 할 때 나는 그 현장이 떠오를 때가 있다. 사역한 이후 늘 후회되는 것 중에 하나가 그 현장과의 거리감 때문이다. 교회의 사역과 그 현장과의 거리감. 그럼에도 그 현장이 보였다는 것에 때론 다행이다 싶다. 가장 생각나는 것은 다문화 가정 아이가 떠오른다. 내가 감당해내지 못했고, 사실은 내 중심점이 아니었다. 다문화는 특수 사역의 영역이었던 걸까. 일반교회(?)는 담아내지 못했을까.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가 아이의 뺨을 후려쳤을 때 그 가정은, 타지에서 온 그 어머니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한부모가정도 그렇다. 집중이랄까 산만이랄까 정도가 심한 두 아이가 있었다. 그때까지 내 사전에 한부모 가정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도 참 이상했다. 나는 그 두 아이를 만난 이후 한부모 가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이건 내 편견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두 아이에게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부재가 그 흔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물론, 한부모가정 아이들이 전부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부모 가정이든 아니든 나를 비롯해 깨어진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겐 분명 상처의 흔적이 있다고 나는 그렇게 본다.  그러고보니 한부모 가정은 아니었지만 한 아이가 도저히 감정이 절제가 안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랑 쉽게 못 어울리고 조금만 이야기하다 흥분하면 주먹부터 나갔다. 그 친구의 어머니를 만나니 이해가 되었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심리상담인가 그쪽에서 일하시는 분이셨다. 자신은 재혼해서 그 친구의 새 어머니인 걸 밝히면서 아이가 약을 먹고 있는데 그 약을 먹으면 감정이 절제가 안 되어서 그렇다고. 이해해 달라고 말해주러 오셨다. 교회는 안 다니는 분이셨고, 잠깐 이야기했지만 따뜻하고 참 좋은 분으로 느껴 졌다. 

 물론, 사회가 정상가족으로 보는 곳에서도 충분히 결핍과 상처와 그 가정에 속하지 않으면 모르는 각자의 사정들이 존재할 것이다. 

 여전히 계속 사역을 한다. 사람들을 본다. 각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현장은 없어지지 않았다. 청계천 빈민들은 사라졌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사정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나의 사역은 그 현장이 잊혀지고 안 보일 때 끝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김진홍 전도사가 고군분투한 사역 현장을 여전히 되새긴다. 그의 행보는 참으로 아프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사역을 가르쳐 준 그때 그 '전도사'는 여전히 내 롤모델이다. '목사'보다 '전도사'가 더 좋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전도사'가 계속 그리워졌으면 좋겠다. 내 바람이다. 특히, 오늘같은 날 꼭 기억해야할 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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