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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학벌사회에서 입은 상처. 대항적 교육과 신앙.

by 카리안zz 202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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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엄기호의 책에서 참 공감되는 내용이 있었다. 군대에서 다양성을 경험하고 자신이 한층 배워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폐쇄된 군대인데 의외라고 엄기호는 말했던 게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돌이켜 보면 정말 그랬기에 공감되었다. 물론, 군대의 시스템은 나랑 전혀 맞지 않아 다시는 가고싶지 않은 곳이고, 꼭 군대를 가야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참 많이 배웠다.

모태신앙으로 나는 늘 기독교 전통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름도 요한이고 장래희망도 늘 목사였기에 학교에서의 주변 반응은 뻔했다. 물론, 고등학교때 나는 독특하긴 했지만 그다지 주변 환경이 크게 기독교를 벗어나진 않았다.

군대에서 교회란 곳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놈들과 어울려 지냈다. 나중에 신대원에서 봤던 희권이형(당시 총신대 기독교교육이었던가 그랬다)말곤 대부분 교회를 안 다녔던 기억이다. 가깝게 지냈던 동기나 수송 친구들이 그랬다.

동기였던 대희는 어머니가 무속인이었다. 동인이는 마술학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골때리는 놈이긴 했다. 지는 꿈이 술집을 여는 건데 밖에 나가면 빡세게 돈을 벌어야 한단다. 그래서 호X에 가서 돈 벌 생각까지 했다. 나야 그런데가 있는지 그때 첨 알았다. 결국 말빨러여서 영업직을 하고 있다.

이놈은 참 머리가 비상했다. 특히 암기력이 좋았다. 공부했으면 참 잘했을 거 같은데. 집안 형편도 그런대로 괜찮다 하던데 왜 공부를 안하고 엉뚱하게 사는지 궁금했다. 동생은 공부를 잘해서 꽤 괜찮은 곳에 갔다고 한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버지랑 사이가 틀어졌다고 하더라. 난리를 치고 지는 이렇게 됐다고 한게 얼핏 기억에 남는다.

돌이켜 보면 똑똑한 놈들이 제법 많았다. 물론, 그 똑똑이 학교 시험과는 별개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공부할 환경이 갖춰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었다. 선임이었던 동갑내기 용관이도 그랬다. 용관이 동기 중 고대 다니던 좀 이상한 놈도 있었는데 적어도 그놈보단 대학도 안 다니고 웨이터하던 용관이가 훨 똑똑했다. 물론, 용관이는 피지컬과 외모가 뛰어났지만.

그외에도 동반입대한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두 후임도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 못해서 검정고시 준비하던 그 친구들도 똘똘했다.

물론, 좋은 대학 나와서 당연히 똑똑한 사람들도 있었다. 경일이랑 현호형이 대표적으로 그랬다. 그땐 대학서열이라던가 전문직이라던가 개념이 별로 없었을 때라 못 느꼈는데 몇 년 전부터 그걸로 사람을 은연 중 평가한다는게 자꾸 느껴 졌다.

새삼 군대때 경험이 자꾸 떠오른다. 모든 걸 그리 보고싶진 않지만 적어도 공부와 거리가 멀어진 친구들 중엔 집안 환경이 문제가 된 친구들이었다. 물론, 내 경험만이여서 확실한 건 아니겠지만.

확실한 건 인간에 대한 평가를 적어도 학력이라던가 외적요소로 하는 건 자연스레 버리게 되었다는 거다. 내가 군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건 이런 이유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시선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한층 넓어져서. 그래서 많이 배웠다.

지금도 내 세계에 갇히지 않으려 계속 자각은 하려고 한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공부해야한다는 말이 아직도 통용되는 것 같다. 나는 이 말이 우리 사회의 상처라고 본다. 이 말에 무시받아 상처입은 마음들이 보인다. 이런 교육으로 우리는 형성되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도교적 인간형성은 이런 면에서 대항적 교육을 가진다. 그런데 그 내용을 실질적으로 채워나가야 하는데 기나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때론 걍 성령님 알아서 해주십시오라고 말하기도 한다. 온 사회적 분위기에 형성된 머리와 몸을 예배와 성찬으로, 계몽으로 그걸 이길 수 있을까 하는 패배감에. 그럼에도 그 패배감을 지우고 다시금 그분의 선하신 뜻에 기댄다. 사실 나 역시도 변화되었는데 다른 이들은 한결 쉬울 것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쓴 거라 갑분 신앙이지만 간만에 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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