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오랜 기다림 끝에 개봉한 영화 '승부'는 한국 바둑계의 전설적인 인물 조훈현 9단과 그의 제자 이창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2020-21년 촬영 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드디어 관객들을 만난 이 영화는 단순한 바둑 대결을 넘어 인간의 승부와 성장, 그리고 사제지간의 복잡한 감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1. 영화 '승부'의 실제 이야기: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배경
'승부'는 80년대 말 세계 바둑계를 평정한 조훈현 9단과 그가 발굴한 천재 소년 이창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조훈현은 1988년 당시 약 5억 원이라는 거액의 상금이 걸린 세계 프로바둑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한국 바둑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인물입니다.
영화의 출발점은 1990년, 조훈현이 전주에서 열 살 바둑 소년 이창호를 만나는 장면부터입니다. 당돌한 이창호는 감히 조훈현에게 "다시 붙어보면 내가 이긴다"라고 도전장을 내밀고, 조훈현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창호가 바둑을 배운 지 불과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죠.
2. 한 지붕 아래 스승과 제자: 흥미로운 동거 생활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이창호가 조훈현의 집에서 함께 살며 바둑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실제로 이창호는 조훈현의 집 2층에서 지내며 숙식을 함께했고, 조훈현의 아내는 이창호를 마치 자식처럼 돌봤습니다.
문정희 배우가 연기한 조훈현의 아내 역할은 특히 인상적인데, 아홉 살 아이를 자신의 집에 데려와 키우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부터, 후에 그 아이가 남편의 자리를 위협할 때의 복잡한 감정까지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지고 들어오는 남자랑은 살아도 한심한 남자랑 못 산다"라는 대사는 이 상황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줍니다.
3. 바둑 기풍의 차이: 승부의 본질적 갈등
영화의 핵심 갈등은 조훈현과 이창호의 바둑 스타일(기풍) 차이에서 시작됩니다. 조훈현은 '조재비'라는 별명처럼 빠르고 공격적인 바둑을 추구했던 반면, 이창호는 방어적이고 안정적인 바둑을 선호했습니다.
"바둑의 본질은 전투, 공격이야"라는 조훈현의 가르침에 이창호는 "이렇게 두면 만약 잘못되었을 때 역전될 수 있습니다"라며 자신만의 철학을 고수합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이창호가 이미 자신만의 바둑 철학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며, 그것도 당대 최고의 바둑 기사였던 스승의 의견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4. 제자의 도전, 스승의 위기: 숨막히는 대결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스승과 제자가 공식 대회에서 맞붙는 장면입니다. 15세의 이창호는 자신을 키워준 스승을 이기고 타이틀을 차지합니다. 이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 심리적 드라마를 만들어냅니다.
한 대회에서는 바둑판 위에서는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식사 시간에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어색하게 밥을 먹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창호는 예의를 지키느라 스승이 먼저 먹기 전까지 수저를 들지 않았고, 식사 내내 두 사람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극적인 것은 경기가 끝난 후 두 사람이 같은 차를 타고 같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상황입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불편한 상황이 섬세하게 묘사됩니다.
5. 두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 이병헌과 유아인
'승부'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이병헌과 유아인의 연기 대결입니다. 이병헌은 조훈현 역으로 바둑 기사의 습관, 말투, 심지어 손가락 관절까지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 스타일도 영화 속 두 인물의 기풍처럼 대비됩니다. 이병헌은 발산하는 연기를, 유아인은 수렴하는 연기를 보여주며 캐릭터의 특성을 강화합니다.
영화는 유아인의 사건으로 개봉이 지연되었지만, 감독은 "유아인 배우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영화에서 그의 역할을 덜어낼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나루토에서 사스케를 삭제하거나 아이언맨을 삭제하는 수준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죠.
6. 바둑을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영화
많은 관객들이 우려했던 "바둑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라는 점은 영화를 본 관객들의 리뷰로 해소됐습니다. "바둑 저도 잘 몰라요. 1도 몰라요. 바둑을 몰라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라는 평가처럼, 승부는 바둑의 룰보다는 인간의 내면과 관계에 집중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바둑 경기의 긴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캐스터의 중계, 주변인들의 반응, 음향 효과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관객이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7. 역사적 의미와 오늘날의 가치
'승부'는 단순한 스포츠 영화를 넘어 한국 바둑의 역사적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80년대까지 세계 바둑계에서 변방국 취급을 받던 한국이 조훈현을 통해 세계 정상에 올라서고, 이창호를 통해 그 위상을 공고히 하는 과정은 한국 스포츠 역사의 중요한 장면입니다.
또한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 세대교체의 아픔과 영광, 존경과 경쟁이 공존하는 복잡한 인간관계 등 보편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어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닙니다.
결말
영화 '승부'는 단순히 이기고 지는 승부가 아닌, 인생의 다양한 승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승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매력을 지닌 '승부'는 2025년 한국 영화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바둑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 영화는, 바둑을 모르는 관객에게도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