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유다서

[설교문] 유다서 1장 11-13절(유 1:11-13, 유 1:11~13)

by 카리안zz 2021. 4. 16.
반응형


유다서 111-13

 

복싱이라는 스포츠가 있습니다. 이 복싱 훈련 중에 쉐도우 복싱이 있습니다. 가상의 상대를 정해 놓고 마치 진짜 경기를 하는 것처럼 훈련을 하는 겁니다. 쉐도우 복싱을 복싱 경험이 많은 제 3자가 지켜본다면 상대방이 대충 어떤 스타일의 복싱을 하는지 어렴풋이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유다서를 읽을 때도 이런 쉐도우 복싱 느낌이 납니다. 유다서 3절에 분명 싸우라고 했기에 그 싸움에 대상이 있었습니다. 유다서가 쓰여질 당시에 저희가 있었다면 그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있을 텐데 이천년이 지나서 그 대상을 명확히 알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쉐도우 복싱을 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제 3자의 입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유다서에 나오는 이 거짓교사의 정체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처음에는 2세기 영지주의자들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초기의 영지주의자들이 아닌가 추측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비슷한 면이 있다고 시기적으로도 상당히 앞선 유다서에 바로 적용을 하기는 조금 지나친 면이 있기에 많은 논쟁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집단의 정체를 파악하기보다는 그들은 어떤 거짓 교사였는지를 아는게 더 확실하고 중요합니다.

이들은 8절에 꿈꾸는 자들로 불립니다. 풀어서 말하면 자신들이 직접 신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영광스러운 존재를 비방한다고 했는데 하늘의 법을 전달해 준다고 믿었던 천사들을 모독한 것입니다. 스스로 꿈을 꾸어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기에 자신들이 이제 천상 계시의 중매자가 된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에서 우리가 알듯이 천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하셨습니다. 그것을 비방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주권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또 이들은 반율법적입니다. 당연히 자신들이 하나님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존재이기에 윤리적인 제한에 묶여 있지 않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윤리적인 제한, 의무, 기준, 특히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7절에 유다가 소돔과 고모라를 괜히 언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한이 없어진 이들은 탐욕의 인간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1절에서부터 거짓 교사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높아집니다.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가인과 발람과 고라가 각각 언급이 되었습니다. 가인은 유대 전통에서 죄인의 원형입니다. 가인은 살인을 했죠. 발람은 돈에 눈이 멀어서 죽음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고라는 시편의 기록에 본다면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람들을 죽음에 길로 이끌었습니다.

단순히 거짓 교사들의 문제는 교회당 안에서 옳게 가르치냐 못 가르치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교회에서 좀 다른 말을 한다고 심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교회의 가르침에는 항상 이분법적인 가르침이 있다고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심하게 상대를 악마화한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항상 편가르기를 하고 상대방 말이 마음에 안 들어 악마화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죄와 악을 분별하지 못해 아무 소리내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비극은 없습니다. 오늘 유다가 괜히 살인, 탐욕, 시기를 언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이 모습은 죄와 악의 근원을 지적한 것입니다. 가인의 그 살인하는 모습은 세계 1, 2차대전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더구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그 원형을 더욱 볼 수 있습니다. 삯을 위해 살았던 발람의 그 탐욕을 보십시오. 오늘 탐욕하는 자들로 인해 무수한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들은 끝없이 가지려고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폭력을 우리는 목격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고라의 패역을 보십시오. 마음 속에 우러나는 그 악한 마음에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된 배경을 보십시오. 트럼프는 못 사는 백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왜 백인들이 지금 못 사는가. 그건 이민자들 때문이다! 인간의 부패한 마음을 트럼프가 쏟아 부은 것이죠. 불길한 예감이면 좋겠지만 오늘 우리도 시기와 탐욕에 트럼프같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합니다. 시기와 탐욕과 혐오의 먹이를 죄악에게 주다가는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미얀마 군부 세력을 보십시오. 가인의 길, 발람의 길, 고라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바로 미얀마 군부입니다. 7년 전 세월호 사건을 기억해 보십시오.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배의 선원들을 포함하여 구조하지 않은 자들, 구조에 관심이 없는 자들 모두 가인과 발람과 고라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오늘 유다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11절에서 13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11절에서 13절 말씀입니다.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12: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반응형

'설교 > 유다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교문] 유다서 1장 24-25절(유 1:24-25, 유 1:24~25)  (0) 2021.05.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