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5분 설교 - 약할 때 강함되시네(고린도후서 11장 30절, 고후 11:30)
최근 독일의 수상인 메르켈 총리가 정계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지지율이 70%가 넘어 재선을 할 수 있었지만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6년 동안 독일과 유럽을 이끌었던 거인이 스스로 자리를 내려왔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그녀를 소개할 때 시골 교회에서 자란 소녀라고 말합니다. 시골 작은 교회에서 자란 소녀가 유럽을 이끈 지도자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아주 대비되는 이미지입니다. 시골의 작은 교회와 거대한 유럽이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롤모델로 목회자인 아버지를 꼽았다고 합니다. 안전하고 풍요롭게 서독에서 목회를 할 수 있었지만 동독의 민족들을 위해 동독의 시골 작은 교회에 목회를 시작한 겁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작고 약한 시골교회 목사의 모습이 전 유럽을 이끄는 지도자 상이 될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분명히 약해 보이는데 강합니다. 오늘 우리는 기독교 정치 지도자인 메르켈을 통해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약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약함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고린도교회에게 써보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뉴욕, 런던, 서울과 같은 도시가 바로 고린도입니다. 로마의 이 거대 도시는 거대한 것에 맞춰서 있어보이는 것들을 추구했습니다. 로마 관리들도 으레 자신들의 업적을 뽐냈죠. 심지어 대리석에 자신의 업적을 새겨놓곤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자신들의 대표로 있어보이는 자를 추구했습니다. 로마 관리처럼 위대한 일을 하거나 말을 유수하게 잘하거나 있어보이게 생기거나 딱 어디를 내놔도 있어보이는 사람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을 잘 못했습니다. 학력도 로마 고위층과 비교하면 수준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교육도 그렇고요. 빌립보에서 매질을 당하고 얼마 뒤에 고린도로 갔기에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첫인상은 볼품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외모도 안 좋았습니다. 계속되는 선교 여정 속에서 바울의 얼굴은 망가져 갔습니다. 어쩌면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흔적이 망가져가던 몸과 얼굴을 말하지 않았을까요? 십자가 위에 완전히 망가졌던 예수님의 얼굴과 몸이 그랬듯이요.
이런 이들에게 바울은 자신의 자랑을 말합니다.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자신의 약점들을 자랑하겠"(새번역, 고후 11:30)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있어보이는 것을 자랑하니까 자신의 자랑거리를 말합니다. 그 내용이 고후 11:18-33입니다. 바울의 이력서. 저는 그 내용을 그렇게 부르렵니다. 그의 이력은 수치스럽습니다.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8-33절 많은 사람이 육신의 일을 가지고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지간히도 슬기로운 사람들이라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잘도 참아 줍니다. 누가 여러분을 종으로 부려도, 누가 여러분을 잡아먹어도, 누가 여러분을 골려도, 누가 여러분을 얕보아도, 누가 여러분의 뺨을 때려도, 여러분은 가만히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터놓고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해서, 그렇게는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감히 자랑을 하려고 하면, 나도 감히 자랑해 보겠습니다. 내가 어리석은 말을 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그 밖의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주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아십니다. 다마스쿠스에서는 아레다 왕의 총리가 나를 잡으려고 다마스쿠스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교우들이 나를 광주리에 담아 성벽의 창문으로 내려 주어서, 나는 그 손에서 벗어났습니다. 아멘.
바울은 감옥에 갔고, 매를 맞고, 여러번 죽을 뻔 했습니다. 이게 바울의 이력 내용입니다. 그는 고린도 도시의 로마 관리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했던 어마어마한 큰일들을 돌이나 심지어 대리석에 새겨 놨습니다.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제국 온 천지에 기념비를 대단하게 새겨 넣은 것을 보십시오. 바울의 자랑이 비할 바입니까?
바울의 이력서를 볼 때마다 저는 제 이력서를 생각해 봅니다. 많은 선배 목사님들이 저에게 조언을 해주십니다. 석사는 꼭 따라. 큰 교회는 꼭 경험해봐라. 왜냐하면 담임 목사가 되려면 그것들이 꼭 필요하거든요. 누군가는 담임을 목표로 목회를 하라고 충고까지 해주었습니다. 몇 주 전 중고등부 모임에서도 비슷한 말들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자기 폰을 좀 사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라서 못 사주겠다고 말해줬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바로 사주는데 아쉽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아이들이 “큰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사님들은 돈 많이 벌던데요. 목사님도 큰 교회 가서 사역을 하세요. 사역을 해도 돈 많이 주는데 가는게 낫잖아요.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힘을 주는 겁니다. 그래서 돈 생각했으면 목사 안 하고 딴 직업 알아봤지 왜 목사를 하느냐 라고 말하고 이야기가 끝맺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겨울 수련회를 이 주제로 해야겠다는 마음먹음과 동시에 우리의 내면은 이런 있어보이는 것들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중학생 아이들조차 내면화되었으니 말 다했지 않겠습니까.
올해 저는 어느 해보다 정말 약해진 해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억이라는 큰 빚을 남기셨고, 제가 모아둔 돈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차도 팔려서 제 첫차인 스파크를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기껏 남아있던 것들이 다 사라질 때 저는 오늘 말씀과 만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지만 우리는 약함으로 끝이 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약할 때 강함 되십니다. 내가 약해짐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임재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고 나의 약해짐이 그리스도와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누구보다도 약해지셨기 때문입니다. 또 그분은 약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인간들 중에서도 약한 인간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약함을 자랑하십시오. 그리스도와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