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성장 - 이어령과 강창래.오래 전 읽은 <유쾌한 창조>에 대해

카리안zz 2020. 10. 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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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아무 이유없이 이어령, 강창래의 '유쾌한 창조'를 손에 들었다. 

이 책은 2010년에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보고 비기독교도인 지식인의 눈으로 보는 영성이 어떻게 보이는지 한 번 알기 위해 구입한 책이다. 

 

책의 4장에 해당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비기독교인이 영성을 이해하려고 책 몇 권을 구입해서 읽는 대목이었다. 

4년 전 난 비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책을 읽다니!

하며 혼자 속으로 놀라서 감탄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보는데 머 몇 권 보지 않았네;

그리고 이 정도 책을 읽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지? 의문이...ㅎㅎ

많이 자라났다고 느꼈던 이유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다시 이어령이 김수영과 논쟁을 했던 대목으로 가봤다. 

이제는 조금은 익숙한 이름들이 보인다. 

김현, 김윤식, 강준만, 가라타니 고진, 리영희, 백낙청 예전에는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의 이름이었지만

트위터 질을 몇 년하고 나니깐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이름은 익숙하다ㅎㅎ)

어쨋던 트위터 질이 그리 나에게 무익한 시간은 아니었구나 세삼 느낀다.ㅎㅎ 

이게 커가고 있다고 느낀 두 번째 이유다. 허허 

 

2. 그나저나 이번에는 이어령에 대해서 말해보자. 

다시 읽으니 이어령은 참 오해를 많이 받았나보다. 

김현에게서, 김윤식에게서, 강준만에게서, 가라타니 고진에게서(유쾌한 창조, p.35-7)

그런데 문제는 이어령은 해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언젠가 해명을 했지만 사람들이 몰라주는 경우도 있고(p.31)

타인(그러니깐 당사자 조정래)의 입에서(p. 31-2) 이야기가 나와 오해가 풀릴 때도 있었다. 

 

그 뒤 김수영과의 논쟁이 있었을 당시 

리영희와 임현영에서 나왔던 대화는 상당부분 불확실한 기억이었다.(p.104-9)

기억은 왜곡되고 부풀려지고 진실은 가려진다. 

그래서 그랬을까? 

고종석에게 말년에 영성의 세계로 간 이어령을 어떻게 보냐는 나의 질문에

고종석은 '우습게 봅니다'라고 답했다. 

그 뒤로 이어령에 대한 트윗을 날렸지만 그나마 괜찮았던 게 

'대중에게는 과대평가 되었고 학계에서는 과소평가 되었다.'라고 트윗한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한윤형도 이어령에 대해 아주 잠깐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발단은 예전 사망유희 토론 당시 인터넷에서 역사썰을 푸는 사람으로 유명한 논객(?)이 한윤형과 이어령을 비교하는 글을 올렸는데 

그 유명한 논객은 한윤형을 까고 이어령을 찬양하는 요지에 글을 썼다.(아마 자살을 관련한 이어령의 글을 먼저 한윤형이 비판하고 그 글을 그 유명한 논객이 비판 했다.)

이에 한윤형이 이어령은 당시에는 유의미한 논쟁을 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닥 의미없는 논쟁이고 더구나 지금은 전혀 정치와는 관련없는(정보값이랬나?) 이어령과 자신을 왜 비교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뉘앙스의 글을 적었다.(정확한 워딩은 아니고 순전히 기억에 의존하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

 

어쨋던,

한윤형은 그렇다고 처도 고종석은 강창래가 펼친 이야기를(이어령이 오해받았다라는 요지의 내용)다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쨋든 고종석도 언어학, 문학 그리고 기자를 했으니깐 말이다. 


사실 나도 언론에서 이어령을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까진 괜찮은데

4000년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표현은 과한 감이 있다고 본다. 

강창래 선생도 말했듯 오해를 푸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 대화이듯 

그 두 분도 대화를 하시는게...허허

 

3. 김수영과 이어령의 순수문학 vs 참여문학 논쟁에서 

왠지 사회참여 vs 개인신앙의 대결구도로 다르게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 논쟁의 수준은 다른거 같다. 

(물론 이건 느낌적 느낌이기에 정확히 쓰려면 둘 논쟁을 꼼꼼히 읽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던 점을 유의해 주길바란다.)

김재준과 박형룡의 논쟁이 어땠나? 

박형룡은 김재준을 어떤 식으로 싫어했나!

그가 싫어 그가 민주화 운동까지 하는 걸 싫어하지 않았나!(한국교회 역사와 신학, 이상규, p. 214~215)

머 근데 더 심하게는 그 바닥 사람들은 저 바닥 사람들을 악마화하지 않는가! 

이건 논쟁으로 볼 수 없다. 논쟁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는 마녀사냥이라고 있다. 

우리도 언젠가 독재의 시대에 무엇이 신앙인지

문학계에서 문학이 무엇인지 논쟁했던 것처럼

역사 속에서 신앙이 무엇인지. 신학이 무엇인지 

참되게 논쟁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4. 마지막으로 덕력이 부족해 오류가 많을 수 있다. 

그러한 점이 있다면 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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